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하의 기적 (문단 편집) === 암울한 상황 === 1993년 10월 [[카타르]]에서 열린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북한]],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 6개국이 참가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은 첫 번째 경기에서 난적 이란을 만났지만, [[하석주]], [[박정배(축구)|박정배]], [[고정운]]이 연속 골을 터뜨리며 3:0으로 손쉽게 승리를 따내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경기인 이라크전에서는 [[김판근]]과 [[홍명보]]의 골로 2:1로 앞서나가다가 후반 종료 5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내주며 2:2로 비겼고, 이어진 세 번째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는 후반 15분 [[신홍기]]의 크로스를 사우디아라비아의 골키퍼가 알까기를 하면서 선취점을 얻어냈지만 종료 직전에 상대 수비수 아메드 마다니에게 통한의 동점 헤딩골을 내주면서 다시 한 번 뼈아픈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어진 네 번째 경기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역대 전적상은 물론 최근 상대 전적에서도 대한민국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었고, 객관적인 전력도 한국이 좀 더 우위에 있었던 데다가 지금까지 한국은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에 단 한 번도 패배했 적이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일본 축구를 한 수 아래로 얕잡아보고 있었던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우라 카즈요시]], [[나카야마 마사시]]로 이루어진 가공할 만한 공격력이 있었고 브라질 출신 선수였던 [[라모스 루이]]까지 일본으로 귀화시키면서 한국을 상대할 수 있는 최강의 전력을 조성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운명의 [[한일전]]에서 양 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면서 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주전 공격수 [[황선홍]]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한국에 비해 미우라 카즈요시와 나카야마 마사시가 포진한 일본의 공격력은 한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일본은 전반전에만 두 번이나 골대를 맞추면서 한국을 몰아붙인 반면에 한국은 오히려 전반 34분 [[노정윤]]이 일본 골키퍼와 충돌하면서 부상을 당했고, 플레이메이커로서 한국의 공격을 책임지던 노정윤의 부재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 더군다나 이 당시의 노정윤은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으로 뛰고 있었을 때였고, 시기상 [[J리그]]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일본 프로축구에 해박한 선수가 많이 없었을 때였으니 전략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이었다. 결국 후반 14분 나카야마에게서 패스를 받은 [[미우라 카즈요시]]가 [[최인영]] 골키퍼와 골문 사이로 때린 슈팅이 골로 이어지는 바람에 한국은 경기의 주도권과 흐름을 내주었고 이를 만회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0:1로 패배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자력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갈 기회가 날아가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이 매우 불투명해졌다. '''참고로, 이 경기의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조별리그 [[한일전]]은 일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무려 40년 만에 처음으로 승리한 경기였다.''' 그렇게 모든 팀이 4경기를 마치고 최종전을 앞두게 되었고, 두 장(우승&준우승)의 본선 진출권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아래의 표와 같이 순위가 형성되었다. ||<-2> '''{{{#black 팀}}}''' || '''{{{#black 승점}}}''' || '''{{{#black 승}}}''' || '''{{{#black 무}}}''' || '''{{{#black 패}}}''' || '''{{{#black 득}}}''' || '''{{{#black 실}}}''' || '''{{{#black 차}}}''' || '''{{{#black 비고}}}''' || || [[파일:일본 국기.svg|height=18]] || {{{#black 일본}}} || '''5''' || 2 || 1 || 1 || 5 || 2 || +3 || || ||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height=18]] || {{{#black 사우디아라비아}}} || '''5''' || 1 || 3 || 0 || 4 || 3 || +1 || || ||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height=18]] || 대한민국 || '''4''' || 1 || 2 || 1 || 6 || 4 || +2 || || || [[파일:이라크 국기(1991-2004).svg|height=18]] || 이라크 || '''4''' || 1 || 2 || 1 || 7 || 7 || 0 || || || [[파일:이란 국기.svg|height=18]] || 이란 || '''4''' || 2 || 0 || 2 || 5 || 7 || -2 || || || [[파일:북한 국기.svg|height=18]] || {{{#black 북한}}} || '''2''' || 1 || 0 || 3 || 5 || 9 || -4 || 탈락 확정 || 당시는 승리 시 획득하는 승점이 2점이었다.[* 1994년 월드컵 본선부터 승점이 3점으로 올랐다.] 그러므로 탈락이 확정된 북한을 제외하고 상위 5개 팀 모두 마지막 경기에서 승점 6점 이상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어느 팀이든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이었고,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의 대진은 대한민국 vs 북한, 일본 vs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이었다. 일본전 패배로 가시밭길에 몰리면서 자력으로 본선에 진출할 기회가 날아간 한국은 10월 28일에 동시에 열리는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두 개의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 '''북한을 반드시 이기고 골득실이나 다득점에서 앞서야 한다.''' * '''사우디아라비아나 일본 중 적어도 한 팀은 비기거나 져야 된다.''' 즉 두 팀이 나란히 승리를 거둬서는 안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